기후 변화는 유럽의 관광 명소를 위협하고 있다.
스페인 동북부, 햇살 아래 펼쳐진 카탈루냐의 해안과 국립공원은 이제 AI와 함께 ‘지켜야 할 경관’을 설계하고 있다.
관광지의 방재 설계가 필요해진 이유
스페인은 유럽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국가 중 하나이며, 2023년 기준 연간 약 8,500만 명의 해외 방문객이 찾는다. 이 중 상당수가 바르셀로나, 지로나, 코스타 브라바 등 카탈루냐 지역을 방문하고 있으며, 이 지역은 자연공원과 해안 절벽, 고풍스러운 마을들이 밀집해 있는 구조적 특성상 여름철 산불 리스크가 매우 높다.
특히 카탈루냐는 7~9월 강수량이 급감하고, 지중해성 기후로 인해 초목이 쉽게 건조되며, 인근 내륙 산림에서의 불씨가 해안 관광지로까지 번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2022년만 해도 지로나 북부 산림 지대에서 발화한 불이 해안까지 확산, 1,000명 이상의 관광객이 긴급 대피한 사례가 있었고, 문화유산 등재 예정이던 일부 고건축물이 연기에 손상된 사건도 있었다. 이처럼 관광객 밀집지역과 자연 방화선이 충돌하는 구조는 산불 확산 시 피해를 키우는 주요 요인이 된다.
기존 방재 전략은 지방 소방청과 자연공원 당국의 경험 중심 매뉴얼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인구 밀도, 도로 연결 상태, 계절별 관광객 분포, 지역 경제 의존도 등 복합 요인이 화재 대응에 반영되지 않으며, 위험을 예측하거나 사전 예방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이에 스페인 정부는 산불 예측과 관광지 방재 설계를 통합할 수 있는 지능형 플랫폼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AI 기반 FireMap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하게 되었다.
FireMap 시스템: 지형, 기후, 인구 데이터를 연결하는 알고리즘
FireMap은 바르셀로나 공과대학(UPC)과 스페인 기상청, 유럽연합 공동연구센터(JRC)가 협력하여 개발한 AI 기반 산불 예측 및 대응 시뮬레이션 플랫폼이다. 이 시스템은 기존의 산불 경보 시스템과 달리 관광지, 문화유산 보호구역, 국립공원 등의 특수 지역을 중심으로 동작하도록 설계되었다.
핵심은 딥러닝 기반 시계열 예측 모델이 적용된 데이터 분석 구조다. 위성 이미지, 실시간 기상정보, 과거 발화 패턴, 지형도, 연료지도(fuel map) 외에도 관광객 밀집도, 숙박시설 위치, 주요 도로 흐름, 응급 인프라까지 포함된 구조적 데이터를 통합하여 분석한다. 예측 정확도는 48시간 이내에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산불의 위치와 크기를 78% 이상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향상되었다.
특히 이 시스템은 “관광지 전용 위험도 지도”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FireMap은 주말, 공휴일, 페스티벌 기간 등 관광객 이동량이 증가하는 시점에 자동으로 방화 위험도 시뮬레이션을 강화하며, 도심-산림 접경 지역(WUI)에서는 관광 동선과 연료 분포를 자동 결합해 지형 기반 위험 예측 맵을 생성한다. 이는 지역 소방본부와 지방정부의 대응 시나리오 설계에 실질적인 기반이 되며, 단순한 대피만이 아니라 *“사전에 경로를 피하게 설계하는 관광 유도 전략”으로도 활용된다.
2023년 기준 FireMap은 카탈루냐 내 9개 주요 관광지와 2개 국립공원에 우선 적용되었으며, 2025년까지 스페인 전역 40개 보호지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관광과 방재의 접점을 설계하는 AI
FireMap은 단순히 산불을 예측하는 기술이 아니라, 관광 인프라와 방재 전략을 동시에 설계하는 도구로 진화하고 있다. AI는 예상 발화 지역과 관광객 밀집 구역이 겹치는 경우, 사전 대피 경보뿐 아니라 관광객 분산 경로를 자동 계산한다. 예를 들어 주요 숙박시설, 캠핑장, 문화유산 건물 주변에는 자율 드론 감시 시스템이 배치되며, 이 드론들은 실시간 연기·열 감지 센서를 통해 화재 징후를 포착하고, 위치 데이터를 즉시 FireMap 서버로 전송한다.
AI는 이 데이터를 통해 위험도가 상승한 구역을 실시간으로 색상별로 재구성하고, 특정 구역의 도로를 폐쇄하거나 관광 안내 시스템에 경로 우회를 제안하는 메시지를 자동 발송한다. 이 과정은 소방청의 승인 없이도 이루어지는 준자동 대응 시나리오에 해당하며, 인적 자원이 부족한 지역에서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AI는 숙박 인프라와 연계된 시나리오 기반 훈련 체계도 개발 중이다. FireMap의 예측 결과를 바탕으로 리조트, 호텔, 공공시설 등은 위험등급별 행동 매뉴얼을 사전에 배포받으며, 관광객이 직접 대피 시뮬레이션에 참여하는 체험형 교육 시스템도 시험 중이다. 이는 지역 관광의 신뢰도와 국제적 평판 유지에 기여하고 있으며, 유럽 내 기후변화 대응 관광지 인증제도(Climate-Resilient Destination Index) 도입 시 핵심 평가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FireMap은 결국 방재 중심의 AI 기술이 관광 도시의 설계 전략에까지 영향을 주는 전환점이 되고 있으며, 이는 도시계획, 재난관리, 지역 경제의 교차점에서 기후 적응 전략이 어떻게 통합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유럽형 방재 정책과 AI 플랫폼의 확산 가능성
FireMap은 단일 프로젝트를 넘어, 유럽형 기후 적응 전략의 대표 사례로 자리 잡고 있다. 유럽연합은 2024년부터 기후 적응형 관광지 모델 개발을 위한 Horizon Europe 프로그램에 이 시스템을 우선 채택하였고, 스페인 외에도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포르투갈 등 산불 고위험 국가들이 테스트베드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유럽은 방재 기술을 공공 디지털 인프라의 일부로 간주하고 있어, AI 플랫폼의 표준화와 데이터 공유 체계가 주요 정책 목표로 설정되어 있다. FireMap의 알고리즘은 개방형 API로 제공되며, 이를 통해 타 도시에 맞는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리스본 등 주요 도시들은 이미 자체 방재 시스템과 FireMap을 통합하고 있으며, 향후에는 기후 재난 대응을 위한 범유럽 데이터 연계 시스템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관광도시는 더 이상 단순한 휴식의 공간이 아니라, 재난에 대응하고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공간이어야 한다. FireMap은 이 전환점을 AI 기술로 구체화한 시스템이며, 기후위기 시대의 관광지 설계 모델을 선도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다.
불확실한 계절 속에서도, 관광객은 안전하게 걷고, 지역은 기술로 지켜낸다.
FireMap은 유럽의 햇살을 방재 전략으로 재설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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