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이제 그 속삭임을 인공지능이 듣기 시작했다.
생물의 소리를 감지하는 새로운 관찰 방식
생태계 감시는 오랫동안 카메라, 망원경, 센서 등을 통해 눈으로 보는 방식에 집중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생물다양성의 변화나 종 분포를 감지하는 데 있어 ‘소리’가 중요한 정보 자원으로 부상하고 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 개구리가 우는 패턴, 곤충의 날갯짓 진동은 서식 종의 존재와 행동을 나타내는 중요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청력이나 아날로그 녹음 장비로 이 모든 소리를 분류하고 해석하는 데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했다. 바로 그 틈을 인공지능이 메우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몇 년간, AI 기반 음향 생물 감지 시스템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을 넘어, ‘분류하고 기록하고 예측하는’ 기술로 진화하고 있다.
기존의 생물 조사 방식은 주로 현장 생태학자가 수동적으로 소리를 듣고 수첩에 기록하거나, 녹음된 자료를 사람이 나중에 재분석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이제는 녹음기와 AI 알고리즘이 결합된 장치 하나만 설치하면, 하루 24시간 동안 현장을 관찰하고, 수십 종의 동식물 소리를 자동으로 식별하고 저장할 수 있다. 이는 접근이 어려운 지역, 야간 활동이 활발한 종, 짧은 발성 주기를 가진 생물까지 감시 범위에 포함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특히 청각 기반 관측은 육안으로 보기 어려운 서식지의 변화까지 감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AI 생태 모니터링 기술 중 가장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AI는 어떻게 생물의 소리를 분류하는가
AI 기반 음향 생물 감지 시스템은 크게 세 가지 구성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는 현장에서 소리를 수집하는 마이크로폰 또는 디지털 녹음기,
둘째는 수집된 데이터를 저장하고 전송하는 장치,
셋째는 녹음된 소리를 해석하는 AI 분석 알고리즘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기술은 딥러닝 기반의 음향 분류 모델이다. 대표적인 오픈소스 플랫폼인 BirdNET은 코넬대학교와 독일 체펠린대학교가 공동 개발한 프로젝트로, 3천 종 이상의 조류 소리를 AI가 분류할 수 있도록 훈련되어 있다. 이 모델은 녹음된 소리를 스펙트로그램(소리의 주파수 변화를 시각화한 그래프)으로 변환한 뒤, CNN(합성곱신경망)을 이용해 특정 종의 고유한 발성 패턴을 인식한다.
예를 들어, 새의 소리는 보통 18kHz 사이의 주파수 대역에 분포되며, 종마다 반복 주기나 리듬, 강도가 다르다. AI는 이러한 차이를 데이터셋으로 학습하고, 새로운 소리를 입력받으면 가장 유사한 종을 자동으로 식별한다. 정확도는 훈련 데이터와 지역 환경에 따라 달라지지만, 선진화된 모델은 8595% 이상의 정확도로 특정 종을 판별할 수 있다.
또한 일부 시스템은 단일 종 식별을 넘어, 시간대별 소리 분포 분석, 종 다양성 지수 계산, 군집 간 행동 변화 탐지 등의 고차원 분석 기능까지 제공하고 있다. 이로 인해 연구자들은 단순한 ‘존재 여부’ 확인을 넘어서, 서식지의 건강도나 생물군 간의 상호작용까지 데이터로 정량화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 기술은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업로드하고, AI가 자동 분석을 수행하며, 사용자는 결과만 대시보드에서 확인하는 형태로 간소화되어, 비전문가도 생물 감시에 참여할 수 있는 ‘참여형 생태학’의 문을 열었다.
현장에서 사용되는 AI 음향 감시 시스템 사례
전 세계에서 AI 음향 생물 감지 시스템은 다양한 환경에 적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Rainforest Connection(RFCx)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브라질, 콩고, 인도네시아 등 열대우림 지역에 태양광 기반 AI 녹음기를 설치해 24시간 생물 소리를 수집하고, 불법 벌채와 생물군 교란 여부를 동시에 감시하고 있다.
또한 호주의 ‘FrogID’ 프로젝트는 스마트폰 앱과 AI 음향 모델을 연동해, 일반 시민이 개구리 울음소리를 녹음하고 업로드하면 AI가 자동으로 종을 식별하고 위치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 데이터는 곧바로 호주박물관의 생태 관측 데이터베이스에 반영되며, 사람들이 생물 감시의 주체로 참여하는 구조를 만든다.
유럽에서는 ‘SoundForest’라는 프로젝트가 운영 중인데, 이는 독일, 폴란드, 체코 등 유럽 중부의 삼림 지역에서 조류와 박쥐의 활동성을 AI가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이다. 이 프로젝트는 계절 변화와 이동 경로, 번식기 행동 등의 데이터를 축적해 기후 변화에 따른 생물종 반응을 분석하는 장기 모니터링 체계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AI 음향 감시가 단순한 생물 분류를 넘어서, 산림 보호, 생물 다양성 정책 설계, 시민 참여형 과학 활동, 보존 연구의 데이터 기반 강화 등 다양한 기능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생태계 보호를 위한 기술의 확장성과 윤리적 고민
AI 기반 음향 감시 시스템은 생물종 식별뿐 아니라, 생물 다양성 저하를 조기 경고하고 서식지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제공한다. 이는 국가 차원의 생태 정책 수립, 보호구역 확대, 농촌 지역의 개발 계획 수립 등 환경 관리의 전략적 의사결정에도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의 확장성과 함께 윤리적 고려도 필요하다. 첫째는 개인정보 보호 이슈다. 일부 장치는 공공장소에 설치되며, 인위적 소리(사람의 말소리, 차량, 공장 소음 등)가 함께 녹음될 수 있다. 이에 따라 관련 기관은 음성 식별 기능을 비활성화하거나, 비생물음 필터링 알고리즘을 병행 개발하고 있다.
둘째는 데이터 주권과 접근성 문제다. 특히 생물종 분포 정보는 전통적 지식이나 지역사회와 관련된 정보일 수 있으며, 무단 수집과 공개가 지역 공동체의 자율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에 따라 일부 프로젝트는 현지 주민의 동의와 공동 운영을 원칙으로 설정하고, 수익이 발생할 경우 데이터 소유자에게 공유하는 구조로 설계되고 있다.
셋째는 기술 의존성이다. AI가 오탐지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는 소리, 혹은 소리 없이 행동하는 생물종에 대한 대안 탐색도 필요하다. 따라서 현재는 AI 감지 시스템과 생태학자의 현장 관찰이 병행되는 형태가 권장되며, 이는 기술이 자연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고 확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인간의 귀가 듣지 못했던 소리 그 속에 생태계의 건강과 위기가 숨겨져 있었다.
AI는 이제, 그 소리를 기억하고 분석하는 ‘숲의 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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