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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 생태계 복원과 생물다양성

AI와 토착 지식의 통합: 공동체 기반 생태복원의 새로운 흐름

by siahflower2025 2025. 4. 23.

기술은 계산하고, 사람은 기억한다.
AI가 예측하고 설계하는 복원 전략에 이제 ‘공동체의 눈’이 결합되고 있다.

 

복원 기술의 진화와 토착 지식의 귀환

AI와 토착 지식의 통합: 공동체 기반 생태복원의 새로운 흐름

AI는 생태계 복원의 정밀도와 속도를 크게 향상시켰다. 위성 영상, 센서 네트워크, 예측 모델은 수십 년 단위의 퇴화 흐름을 수치화하고, 최적의 개입 전략을 자동으로 제안한다. 그러나 이 기술이 실제 현장에 적용될 때, 환경에 가장 가까운 존재는 여전히 ‘그 땅에 살아온 사람들’이다.
토착 공동체는 지역 생태에 대한 경험적 지식을 오랜 세대에 걸쳐 축적해왔고, 이 지식은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복원 단서를 담고 있다. 최근 전 세계 복원 프로젝트는 인공지능 기술의 정밀함에 지역 커뮤니티의 생태 지식을 결합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윤리적 고려가 아니라, 복원의 효과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과학적 전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간과되어왔던 토착 지식은 이제, AI의 예측 모델을 조정하고 보완하는 실질적 입력 데이터로 작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역 주민들이 계절 변화에 따른 식생 패턴, 토종종자의 생장 조건, 기후 민감 지역의 위치 등을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을 때, AI는 이 데이터를 학습 값으로 흡수하여 보다 정밀한 공간 예측과 시뮬레이션을 수행할 수 있다. 기술과 지역 지식은 복원의 목적을 공유할 때,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며 하나의 시스템이 된다.

 

AI와 커뮤니티 생태 지식의 융합 방식

AI와 토착 지식의 통합은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니라, ‘참여형 데이터’ 구조 안에서 실현된다. 이는 지역 주민이 데이터 제공자이자 복원 전략 설계의 주체로 함께 참여하는 방식이다. 먼저 AI는 위성 영상, 토양 센서, 생물 감지 데이터를 통해 퇴화 지역의 패턴과 복원 시나리오를 제안하고, 공동체는 이 시나리오의 현장 적합성을 검토하거나 보완할 피드백을 제공한다. 이 과정은 복원 모델의 학습 데이터셋에 반영되어, 기술의 지역화(localization)가 실현된다.

대표적인 기술로는 참여형 지리정보시스템(PGIS), 커뮤니티 주도 공간 데이터 수집 툴(MERMAID, OpenStreetMap 기반 앱 등), 그리고 AI가 가공하는 지역 식생·전통 토지 이용 이력 데이터셋이 있다. 이들 데이터는 단순 참고자료가 아니라, 기계 학습의 핵심 변수로 사용된다. 특히 강우에 따른 침식 발생 구간, 계절별 가축 이동 경로, 문화적 금지 구역과 같은 공식 지도에는 없는 정보가 복원 전략의 적중도를 높이는 결정 요소가 된다.

AI는 이처럼 비정형 데이터를 구조화하고, 공동체가 직접 해석하고 조정할 수 있는 복원 시뮬레이션을 제공할 수 있다. 이때 핵심은 기술의 투명성과 해석 가능성이다. AI는 결정이 아닌 제안의 도구로 사용될 때, 공동체의 신뢰를 얻을 수 있으며, 지속적인 참여와 피드백을 가능하게 하는 복원의 협업 모델로 작동할 수 있다.

 

실제 적용 사례: 기술과 공동체가 함께 복원한 현장들

호주 북부의 욜루 원주민 지역에서는 AI 기반 산불 관리 모델에 지역 커뮤니티의 전통 불 관리 지식이 통합되었다. 원주민들은 수천 년간 계절별 ‘저강도 화전’을 활용해 대형 산불을 예방해왔고, 이 데이터는 NASA 위성 영상 기반 기후 시뮬레이션 모델의 보정값으로 입력되었다. 결과적으로 복원 모델의 정밀도가 향상되었고, 동시에 원주민 지식의 과학적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콜롬비아 아마존의 ‘Resguardo’ 공동체는 토지 복원 전략에 있어 AI 기반 위성 모니터링 시스템과 토착 부족의 강·숲의 경계 지식이 결합된 사례를 보여준다. 지역 주민들은 침범 불가 구역, 신성 구역, 고립 서식지 등을 지정하고, 이 구역은 AI 모델의 예측 영역에서 복원 대상 우선순위 또는 제외 구역으로 반영되었다. 이 시스템은 기술적 분석에 문화적 경계를 반영한 첫 복원 지도 제작 사례로도 평가받고 있다.

케냐의 마사이 공동체는 기후 회복력 증진 프로그램에서, 전통적 방목 이동 경로와 현대 AI 기반 식생 예측 모델을 통합계절별 목초지 복원 우선순위를 도출하였다. 위성 기반 모델이 제공한 ‘복원 가능지수’와 마사이 커뮤니티가 제시한 ‘가축 접근성 데이터’가 결합되어, 실제 정책이 보다 현실적이고 문화 친화적인 방식으로 실행될 수 있었다. 이는 AI가 단지 환경적 정확성을 넘어, 사회적 실행 가능성까지 높이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다.

 

기술과 문화의 공동 설계: 생태 복원의 다음 장

AI는 이제 생태 복원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단독 설계자가 아닌 협력자(co-designer)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복원 전략은 더 이상 위에서 내려오는 정답이 아니라, 공동체가 해석 가능한 데이터로 구성된 ‘열린 시뮬레이션’이어야 한다. 이 변화는 기술의 진보와 함께 데이터 민주화, 문화적 권리 존중, 생태정의 실현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복원 논의에 도입하고 있으며, 기술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복원의 정성적 요소를 공동체가 채우는 협력 구조로 전환되고 있다.

특히 복원이 단기 프로젝트가 아닌 수십 년 단위의 지속 가능성을 요구하는 경우, 현지 주민의 지속적 참여와 인식의 수용성이 복원의 성공 여부를 좌우하게 된다. 기술은 반복적으로 시뮬레이션하고 최적 조건을 계산하지만, 복원의 실행과 유지, 돌봄의 주체는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기술은 신뢰 가능한 보조자이자, 공동체 내부의 경험을 객관화해주는 해석 도구가 될 수 있다. 일부 복원 프로젝트에서는 AI 예측 데이터를 지역 주민 회의 자료로 제공하거나, 복원 구간 후보를 공동 워크숍을 통해 선정하는 등 AI와 공동체가 동등하게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구조로 나아가고 있다.

또한 기계는 학습할 수 있지만, 기억할 수는 없다. 세대 간 전승되는 생태 지식, 문화적 금기, 땅에 대한 감각은 AI가 만들어낼 수 없는 영역이다. 토착 공동체는 특정 계절의 바람 방향, 수종 간 상호작용, 전통 축제와 연결된 생태 리듬 등, 수치로 환산하기 어려운 정보를 일상적 기억 속에 담고 있으며, 이러한 정보는 현장에서의 실천 가능성과 복원 대상 지역의 문화적 맥락 이해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기술이 객관적 분석을 제공한다면, 공동체는 정서적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축이 된다. 이는 단순한 감성적 차원을 넘어, 복원이 외부 개입이 아닌 ‘지역 스스로의 회복’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AI는 확장성과 예측력을 제공하고, 공동체는 의미 부여와 실행력을 제공한다. 이 두 요소가 연결될 때 복원은 단순한 과학적 시도가 아니라, 생태계와 인간이 다시 관계 맺는 새로운 설계의 장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는 복원 생태학이 기술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다시 기술과 사람이 함께 설계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지금, 각 현장의 작은 회복과 협업 속에서 시작되고 있다.


숲을 복원하는 손길에 숲을 기억하는 마음이 더해질 때 비로소 땅은 다시 생명을 품을 수 있다.